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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후기 / 김무비

관리자   /   2024-03-15

안녕하세요, 24학번으로 극작과에 입학하게 된 김무비입니다. 이름이 이렇다 보니까 살아오면서 영화와 관련된 농담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천 번도 넘게 겪어온 상황이다 보니 이제는 누가 회심의 개그를 날려도 영혼 없는 웃음만 짓게 돼서 괜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튀어서 개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지금 정말 영화 시나리오를 배우러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니 역시 사람은 이름 따라 살아간다는 속설을 내세우고 싶을 만큼 미친 태세 전환을 하게 되네요. ㅎㅎ 저는 학원 다닐 때에도 맨날 정해진 분량을 한참 넘긴 과제를 제출해서 성진쌤의 극대노를 한몸에 받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수기 또한 길어질 것 같아요. 그래도 거짓 한 자 없이 전부 진심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어렴풋이 영화를 배울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현역 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된 케이스예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수를 시작하려 할 때까진 지금만큼 영화에 애정이 있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글 쓰는 걸 정말 두려워하고 제 부족함에 질릴대로 질렸던 상태였어요. 이제와서 진로를 다른 쪽으로 틀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재수를 택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맹목적으로 포커스 영화 학원에 첫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성진쌤께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듣게 되었어요. 사전 글쓰기로 써갔던 습작을 읽어보시곤 글이 참 좋다며 정말 극찬을 해주셨어요. 학원쌤들도 다 아시는 것처럼 의심도 많고 자존감도 많이 낮았던 당시의 전 ‘아 지금 나 여기 등록하라고 좋은 말씀 잔뜩 해주시는구나’ 하며 어느 정도 흘려들었습니다. 성진쌤이 본인은 빈말 진짜 안 한다고 하실 때도 부끄러운 척 웃기나 했죠. 그 말이 순도 백프로 진실이었다는 건 포커스를 다녔던 작년 한해 동안 누구보다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첫 상담날 이후로 제 글은 성진쌤 수업 시간마다 무자비하게 교정당했고… 목표도 없고 갈등도 없고 구조도 없다며 3연타를 맞기 바빴습니다 흑흑. 마음이 아팠지만 전부 팩트로만 내려꽂으셔서 반박할 여지도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지윤쌤의 수업 시간엔 ‘왜’ 영화를 하고 싶은지, ‘왜’ 그 영화를 좋아하는지, ‘왜’ 왜왜왜왜… 엄청나게 집요한 면접지를 채워야했습니다. 그때 거의 처음으로 그런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며 이제까지 나는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채로 입시를 하기에만 바빴구나, 깨닫게 됐어요.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왜 굳이 나라는 사람한테 와닿았는지,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적고 싶은 사람인지 그제서야 고민하려니까 당연히 빠르게 답을 찾기도 어려웠죠. 그렇게 총체적 노답 상태로 ‘나’에 대해 솔직한 글을 적는 예림쌤 수업을 들으려니 너무너무 어려웠습니다. 평소에도 감정을 표현하고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서툴렀던 저는 자꾸 자기에 대해서 적으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솔직히 반감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걍 재밌는 글 쓰면 장땡인데 왜 자꾸 본인 얘기를 넣으라고 하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포커스에서 도망쳤습니다. (합격 수기에 적을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거나 다시 돌아왔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ㅎㅎ) 영화에 대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을 깨부수는 것처럼 느껴졌던 포커스에서의 수업들이 버거웠던 것도 있지만, 사실 학원을 그만뒀던 가장 큰 이유는 성진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ㅋㅋ 넘 쫄보 같지만 선생님이 저를 꾸짖고 혼내고 하는 게 무서웠던 게 아니라, 저를 너무 잘 알아보셔서 무서웠어요. 저는 스스로 부족한 제 모습이 싫어서,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약한 모습은 숨기고 제 솔직한 감정들은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수십년을 살아오니 나도 만들어진 나에 익숙해지고, 남들도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절 바라봐주고 아무튼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박성진(쌤)이라는 변수가 나타난 거예요. 몇 주 보지도 않았는데 “넌 거짓말도 잘하고 정말 본연의 감정들은 꽁꽁 감추고 있고 어쩌고저쩌고” 정말 정확한 <진짜 김무비> 를 꿰뚫어보는 말만 하는 성진쌤에 겁에 질렸습니다. 진지하게 성진쌤은 무당이랑 같은 기운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성진쌤뿐만 아니고 포커스 쌤들은 전부 사람을 꿰뚫어봅니다. 회피충인 저는 그 상황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었지만, 제 담당쌤도 성진쌤이 돼버렸고… 좀 억울한 게 전 분명 어떤 선생님을 원하냐는 사전조사 질문에 키팅 같은 선생님을 말했는데 위플레시에 나오는 플레쳐의 분신 성진쌤이 절 간택하셨어요. 아무튼 전 저를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 길로 다른 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포커스를 그만두고도 저는 계속 글을 쓰고 피드백도 받고, 과제를 첨삭했습니다. 도저히 나에 대해서 모르겠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이제까지 모른 척해왔던 한심한 스스로를 마주하는 혼란스러웠던 시간들을 회피하고 나니 다시 안정적인 일상이었습니다. 근데 사람이 정말 우스운 게 한번 제 밑바닥까지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전으로 돌아가기가 싫더라고요. 거짓된 내가 아니라 형편없는 나 자신으로써 성장해 당당해지고 싶었어요. 이렇게 모든 걸 회피하며 운이 좋게 나 자신에 대한 고찰 없이 대학에 붙게 된다고 한들, 제 성장은 거기서 멈춰버릴 것 같았어요. 겉핥기가 아니라 정말 나를 후벼파는, 그래서 고통스럽기는 해도 정확히 문제점을 짚어내는 따끔함만이 나를 바꿀 수 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저는 두달 만에 다시 포커스로 귀향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제 두번째 담당쌤은 예림쌤이 되었습니다. ㅎㅎ 담당쌤과는 수업시간 이외에 일대일 상담 시간이 있는데, 저는 이 시간 덕분에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정말 솔직한 글을 적어볼 수 있었어요.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일대기를 쭈욱 적는 게 과제였는데, 내가 어떤 시간들을 거쳐서 지금의 ‘나’가 되었는지 나열해놓으니까 전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면접지의 질문들도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할지 감이 잡히는 듯 했습니다. 예림쌤과의 상담을 통해서 저의 전체적인 컨셉을 잡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응어리짐을 해소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엄청난 대화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예림쌤이랑 사는 얘기들 털어놓으면서 전 정말 위로받았었거든요 흑흑. 그때즈음에 결국 나라는 사람을 공부하는 게 내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커스 선생님들이 저희한테 그렇게 본인이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쓰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글에 자신을 집어넣으라는 피드백을 밥먹듯이 하셨던 것도 그제서야 이해가 됐어요. 원래 제 인생과 동떨어진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적었다면, 그때부턴 제가 잘 아는 이야기를 하려 노력했습니다. 여전히 나를 꺼내는 게 버겁기도 했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걸 확실히 배웠기 때문에 회피하기보단 걍 무작정 하기로 했습니다.

 

 

 

글쓰기는 계단식으로 는다고 하는 말이 있듯, 저도 한칸 오르기 전까지의 정체 기간이 매우매우 길었는데요. 거의 수시 기간 내내 이상한 글을 써가면서 방황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나아질 수 있었던 건 포커스 선생님들의 정확한 피드백 덕분이었습니다. 포커스는 물고기를 잡아준다기보단,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이에요. 과제로 써간 글 하나를 붙잡고 그 글에만 한정된 피드백을 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글을 쓸 때에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해서 앞으로 이야기를 적을 때의 방향성까지 터주는 느낌입니다. 하나의 정답을 제시한다기보다 한사람 한사람을 파악해서 고유한 길을 찾아주시는데, 그렇다 보니까 진짜 제가 알고 있는 학원 동기분들 중엔 겹치는 캐릭터가 없는 것 같아요. 전부 각자만이 쓸 수 있는 글과 갖고 있는 힘이 있어요. 글쓰기에 정답은 없다는 (그치만 오답은 있다는) 예림쌤의 말씀을 되새기며… 저만의 정답을 찾기 위한 시간을 꽤나 오래 보냈습니다. 사실 근데 성장은 오래 붙잡고 있는 거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진짜 딱 뭔가를 깨닫는 지점이 있어야 나아갈 수 있는데, 저한테는 그 터닝포인트가 한예종 2차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예종은 아쉽게 떨어지긴 했지만, 2주 내리 밤새워가며 자기소개서에 이야기 창작에 휘몰아치는 준비를 겪으면서 저는 면접지를 꽉 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정말 왜 이야기를 적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어요. 깨닫고 나니까 이때까지 날린 시간과 기회들이 너무 아까웠고…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 이 글을 읽고 계신 포커스 학생분이 계시다면 면접지랑 자기소개서 미리 좀 채워두라는 선생님들의 충고를 필히!! 잘 들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한번 가닥 잡히면 그걸로 진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으니까 저처럼 지윤쌤 말 안 듣고 후회하지 마시고 미리미리 해두시길…

 

 

 

한예종까지 다 끝나고 남아 있던 정시 시험들은 덕분에 마음 편하게 봤던 것 같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면접에서 무슨 질문이 나오든, 무슨 제시문이 나타나든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으니까요. 서울예대 극작과 실기 시험에서도 제가 평소 좋아하는 테마의 이야기를 가져와 풀어서 썼습니다. 그 글로 합격을 받아냈을 때, 정말 자신이 아는 마음에 대해서 적는 것이 힘 있는 글을 만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정시 기간 내내 성진쌤과 지윤쌤 수업에서 연습했던 것들이 빛을 발했던 것 같아요. 원서 접수 마지막날까지 극작과 안 쓰겠다고 나댔던 저를 붙잡아주셨던 성진쌤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ㅎ 

 

 

 

고생 끝에 얻은 합격도 당연히 기쁘지만 그보다도 값진 건,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거예요. 거의 몇달 간 학원이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매번 이유없이 울었는데, 그런 기색이나 감정을 내비치는 게 싫고 어색해서 집에 들어갈 때면 빨개진 코를 화장으로 덮곤 했어요.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글로 제 마음을 표현하고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오히려 해방이라고 느낄 만큼 좋아졌어요.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던 건 포커스 선생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저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주시고 알아봐주셨기에 올해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수업을 오래 듣지는 못했지만 장비나 기술적인 측면에 있어서 많이 알려주셨던 항빈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글감을 주셨던 첨삭요정쌤들, 작년 한해 포커스에서 함께 피드백 주고받았던 친구 언니오빠들도 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ㅎㅎ 수능 전날, 예림쌤이 존버는 승리한다고 응원 메시지를 남겨주셨었는데 정말 진리인 것 같아요. 지기 싫으면 이길 때까지 하면 됩니다 파이팅!!!